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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왜 다시 인문학인가 - 사람의 무늬를 읽는 학문, <인문학>
  • 기사등록 2025-11-25 11: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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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경영자들은 과연 투자·경영서만 읽을까? 그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인문학이다. 생성형 AI가 콘텐츠를 양산하는 시대. 이제 기업의 생존은 '인간다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기술이 극도로 정교해졌음에도, 정작 기술을 움직이는 판단과 해석은 더욱 어렵고 복잡해졌다. 인공지능은 언어를 모방하고, 수십억 개의 패턴을 예측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를 보이는 지점이 있다. 바로 '무엇을 문제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지점에서 인문학의 역할이 다시금 대두된다.

AI의 고도화가 역설적으로 인간 이해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본질

인간의 무늬를 읽는 학문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 인간의 사상과 문화 전반을 대상으로 가치 탐구와 표현 활동을 수행하는 학문. 대표적으로 철학을 비롯해 문학, 언어학,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종교학, 고고학, 사상, 예술·비평 등이 범주에 속한다.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Cicero)가 'humanitas'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인간성',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다.

한편 인문학에서 문(文)은 한자어로 '글' 외에 '무늬'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즉,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읽고 해석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정의 내릴 수 없'라는 말이 있다. 인문학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다. 우리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계가 변하기 때문이다. 선사시대의 인간, 조선시대의 인간, 개화기를 지나 오늘날의 인간은 서로 다르다. 한때 진리처럼 떠받들어졌던 일부종사(一夫從事)라든지, 삼종지도(三從之道)가 지금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간의 무늬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무늬'란 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가치관, 욕망, 행동 패턴을 말한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선사시대의 인간, 조선시대의 인간, 산업화 시대의 인간은 서로 다르다. 한때의 통념이 오늘날엔 터무니없다 여겨지는 이유도 우리의 무늬가 변했기 때문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중심 학문의 이동

역사적으로 시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학문을 중심에 세워왔다. 건국 직후에는 국가 체제를 세우기 위해 규칙과 권력을 설계하는 법학·정치학이 전면에 섰다. 이후 산업화와 시장 확장이 본격화되자 경제학·경영학·사회학·신문방송학 등이 중심 학문으로 대우받았다. '새로운 학문'의 등장이라기 보다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러한 학문이 중심 기능을 수행했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자동화·네트워크·플랫폼이 일상을 재편하면서, 철학과 심리학을 축으로 한 인문학적 사고의 필요성이 새삼 대두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요즘처럼 인문학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던가.



4차 산업혁명의 역설

: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인간에 대한 해석이 더 중요

AI의 본질은 '인간을 모방하는 기술'이다. 이를 설계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본인 '인간'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인공지능이지만 역설적으로 AI가 고도화될수록 인문학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AI 연구 조직에 인문학자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IBM의 왓슨 프로젝트 초기에는 철학자와 언어학자가 참여했고, 구글·아마존은 인간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기술적으로 모델링하기 위해 인문학 전공자를 투입했다.


AI는 정의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데 최적화된 도구다. 하지만 '무엇을 문제로 삼을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인문학은 프레임을 확장해 맥락과 인간의 동기, 가치의 층위를 읽게 만든다. AI가 인간을 모방하려면 원본을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철학은 개념의 경계를, 역사와 법학은 제도와 규범의 변천을, 심리학은 인간 행동의 동기를 짚어 문제의 올바른 좌표를 잡아준다.


인문학의 역할과 필요성이 사업 영역에서는 생존 문제로 직결된다. 워런 버핏은 투자·경영서만 읽는 리더를 망치만 가진 사람에 비유했다. 그들은 모든 문제를 '못'으로 보고 세상을 숫자와 차트로만 해석하려 든다.

기업의 성패는 결국 의사 결정에 달려 있다. 시장이 불확실할수록 숫자 뒤에 숨은 인간의 무늬를 읽는 능력이 필요해진다.

"소비자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직원들은 무엇을 동기로 삼는가?"

"사회는 어떤 가치를 지지하고 어떤 윤리를 경계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조직은 전략을 세울 수 없다. 애플·나이키·파타고니아 같은 브랜드가 강한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가치와 이야기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문학은 조직의 지속 가능성에도 기여한다. 규율로만 굴러가는 조직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구성원들의 감정, 공정, 일하는 의미를 파악하고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직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장려하기 위한 구글의 <20% 룰>은 정규 업무 외에 전체 근무 시간의 20%를 스스로 선택한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정책이다. 이 정책에 힘입어 Gmail, Google News, AdSense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들이 탄생했다.


한편 넷플릭스는 자율과 책임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직원 개개인이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의사결정하되, 동시에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분명하게 지게 하는 문화다. 전통적인 규칙이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소속감과 의무감을 부여한 것이다.



기술의 시대에 더 중요해지는 인간 이해

앞으로의 시대는 '기술을 얼마나 잘 다루는가'가 아니라, '인간을 얼마나 깊이 해석하는가'가 경쟁력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인문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AI 시대의 도구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원본을 정확히 읽어내기 위한 핵심 기술이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문학이 결합될 때,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다. 아이폰 이후 새로운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AI. AI는 도구다. 도구의 진화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순간이 과연 올까? 어떤 방향으로 시대가 변화하든 결국 인간을 더 날카롭게 이해할 수 있어야 인공지능도 더 잘 다룰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경영의 언어를 다시 써나가고 있다. 숫자와 알고리즘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문학. 즉, 사람의 무늬를 읽고 글로 표현하는 기술이야말로 AI 시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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