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열 기
세계는 지금 조용한 전쟁에 돌입했다.
군대가 총을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국익을 지키는 전쟁, 바로 ‘주권 AI(Sovereign AI)’ 경쟁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정점을 향해 가는 가운데, 각국은 더 이상 외국 기술에 의존하는 AI 생태계를 위험 요소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국가 안보·경제·주권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도 결국 선택을 내렸다.
한국 역시 주권 AI 구축을 향한 국제 경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전력·도로·통신과 같은 국가 인프라처럼, 국가의 기능과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전략 자산이 되어 버렸다.
나라마다 속도가 다를 뿐, 방향은 같다.
유럽(EU)은 ‘EU AI Act’를 통해 자국 데이터 보호와 AI 규제를 엄격히 강화하고 있으며,
인도는 자국민 데이터가 해외에서 처리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자체 초거대 모델 개발과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을 앞다투며 국가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IT 정책이 아니다.
국가가 스스로의 정보, 스스로의 모델, 스스로의 판단 체계를 만들어
외국 기술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주권 선언’이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손꼽히는 반도체 강국이며,
높은 디지털 인프라 수준과 빠른 ICT 기술 확산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AI 모델과 데이터 처리의 상당 부분을 미국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원, 공공기관, 심지어 기업들도
민감정보를 기반으로 한 AI 서비스를 도입하려 할 때
“데이터가 해외로 넘어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를 항상 안고 있다.
이제 한국은 다음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AI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이 바로 주권 AI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이 주권 AI 경쟁에서 결코 뒤쳐진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도체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최고의 HBM·메모리 생태계를 구축
AI 모델 : HyperCLOVA X, KoGPT 등 국내 초거대 모델이 연달아 발표
클라우드 인프라 : 국내 기업들이 대형 데이터센터를 확장하며 ‘국내 처리’ 요구에 대응
한국은 이미 하드웨어–모델–데이터의 3박자를 모두 갖춘 드문 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주권 AI 논의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 가능한 전략이다.
주권 AI가 왜 중요한가?
단순히 국가 기술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AI는 의료·행정·산업·교육 등 국가 운영의 핵심 기능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언젠가는 ‘AI의 능력’이 그 나라 국민들이 누릴 행정 수준, 병원 치료 품질, 기업 경쟁력, 교육 수준을 모두 결정지을 것이다.
만약 핵심 AI 기술이 외국 기업에 의존하게 된다면,
국가의 중요한 판단 체계조차 외부 기술 플랫폼에 기반하게 된다.
그것은 기술 종속이고, 나아가 데이터 종속이며,
궁극적으로는 주권의 위기가 된다.
주권 AI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이 해야 할 일은 기술만이 아니다.
기술은 이미 충분히 높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체계 설계이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어떻게 국내에서 처리하고,
어떤 모델을 국가 기반 모델로 삼고,
어떤 기준으로 AI를 인증하고,
어떤 윤리·보안 체계를 만들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정리되어야 진짜 주권 AI라고 부를 수 있다.
세계는 이제 AI를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었다.
AI를 가진 나라와 가지지 못한 나라,
AI를 스스로 만든 나라와 외부에 의존하는 나라의 차이는
앞으로 몇십 년간의 국가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한국도 이제 주권 AI를 통해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답을 내야 할 시간이다.
주권 AI는 미래의 기술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생존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