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대 편집장

생성형 AI의 등장은 많은 이들에게 한 가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 글쓰기는 더 이상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는 단순한 결론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AI가 글을 대신 써주기 시작한 이후, 역설적으로 인간의 글쓰기 역량은 더욱 높은 가치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글쓰기의 기능을 단순한 문장 생산이 아니라 '사고를 구조화하는 기술'로 보아야 한다.
우선, AI의 성능은 사용자 프롬프트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프롬프트란 결국 글이다.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기술하지 못하면, AI는 그저 평균값에 가까운 글을 생성할 뿐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명확한 주장, 논리적 근거, 문장 구조, 맥락 설정 등이 필요하다. 즉,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면 AI를 잘 활용할 수 없다. 글쓰기 역량은 AI 사용 능력의 전제조건이 된 것이다.
또한 AI가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도 인간의 경험·해석·관점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AI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매끄럽지만, 결국 '남의 시선과 사유의 결과에서 조합된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
반면 인간의 글은 경험과 가치 판단을 기반으로 한다. 사회·정치·경제 문제를 다루는 칼럼일수록 개개인이 가진 지적 맥락과 세계관이 중요해진다.
독자는 정보를 얻기 위해 기사를 읽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필자의 해석을 보기 위해 글을 읽는다. 이 "관점의 희소성"이 바로 AI가 채울 수 없는 영역이다.
글쓰기가 여전히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사고의 지속성과 깊이 때문이다.
오늘날 숏폼 콘텐츠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사고가 단편화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하지만 사회적 의사결정, 정책 분석, 기업 전략과 같이 복잡한 문제는 긴 사유와 구조화된 논리를 요구한다. 글쓰기는 이러한 과정을 가장 정교하게 훈련하는 도구다. 글을 쓰는 동안 인간은 생각을 길게 끌어가며 모순을 제거하고, 근거를 채워가며 결론을 검증한다. 이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사고 근력'이다.
마지막으로, AI 시대의 글쓰기는 개인의 정체성과도 직결된다. 온라인 공간에서 개인도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시대, 글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자기 표현 수단이다. AI가 쓴 글로는 신뢰를 만들 수 없다. 타인의 문장을 복붙한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생존한 사례는 없다. 오히려 AI의 보편화는 개성 없는 글의 홍수를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 인간의 명확한 관점과 날카로운 해석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생성형 AI는 문장을 만들 수는 있지만, 생각의 기준점을 만들지는 못한다. 결국 경쟁력의 중심은 '문장을 쓰는 능력'이 아니라 '사유를 조직하는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글쓰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AI 시대의 지적 활동을 지탱하는 마지막 기반이 될 것이다. AI의 시대가 글쓰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생각하며 쓰는 법'을 다시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